26년간 지하 개발 ‘한우물’…앞선 기술력으로 해외 굴착시장도 뚫을 것




코로나19 사태는 ‘언택트(Untactㆍ비대면)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됐다. 전통적으로 노동집약적인 건설현장조차 인력을 줄이고 기계에 맡기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기계 두더지’로 불리는 실드TBM을 앞세워 국내 지하굴착 시장을 선도하는 강릉건설(회장 김중희)이 주목받는 이유다.

정부는 도시화로 인한 교통체증 해결을 위해 지하 루트를 찾고 있다.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와 신안산선,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경부고속도로(양재∼한남) 지하화 등 지하 굴착물량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국내 굴착시장에서 점유율 1%대에 그쳤던 TBM 시장도 전환기를 맞았다.

특히, 오는 2026년 개통하는 수도권 제2순환(김포∼파주) 고속도로 2공구는 직경 14m짜리 대구경  TBM 장비의 국내 데뷔 무대다. 철도가 아닌 도로에 진일보한 실드TBM이 적용되는 것도 처음이다. GTX는 TBM이 굴착 속도와 안전에 이어 가격 경쟁력까지 장착하는 터닝포인트다. 일반적으로 기계식 굴착 방식인 TBM과 발파 방식의 NATM(신오스트리아 터널 굴착공법)의 가격 경쟁력이 역전되는 굴착길이는 3.2㎞다. GTX의 평균 역 간격은 7.2㎞로 기존 도시철도(2㎞ 미만)보다 3배 이상 길다.

김중희 회장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어렵고 고되다. 하지만 기술개발이 어렵다고 포기하면 기업이 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건설산업계의 기술 CEO(최고경영자) 모임인 건경 리더스포럼 회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지금까지가 지상 개발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지하 개발의 시대”라며 “지하공간 개발 토털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증시 상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철저한 지질조사ㆍ기술 개발은 필수

강릉건설은 장비 제작과 기술 지원, 현장 시공이 모두 가능한 국내 유일의 TBM 전문회사다. 지난 26년간 지하공간 개발이란 한 우물만 팠다. 지금까지 전력구, 가스주배관, 하수터널, 지하철 등 총 90여건의 TBM 공사를 수행했다. TBM으로 굴착한 터널거리를 모두 합치면 70㎞에 이른다. 김중희 회장은 “철저한 지질조사와 적확한 장비 선택, 끈질긴 신기술 개발만이 완벽한 시공을 보장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TBM 제작 공장을 보유한 회사는 강릉건설과 이엠코리아 두 곳뿐이다. 이엠코리아는 일부 중소구경 TBM 장비를 제작ㆍ공급할 뿐 직접 시공(운영)은 하지 않는다.

강릉건설은 지난 2009년 경기도 안성 일죽에 실드TBM 전용공장을 설립했고, 지난해 2월 국토교통부로부터 TBM 제작이 가능한 ‘건설기계 제작ㆍ조립자’로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일본 IESEKI사, 중국 CRCHI사와 기술제휴로 국산 실드TBM 10기를 제작했다. 국산 1호기(직경 2270㎜)는 2009년 10월 한강 하류 횡단 굴착공사에 처음 투입됐다.

강릉건설은 글로벌 장비제작업체로부터 까다로운 운영사로 악명(?)이 높다. 장비를 직접 제작하는데다, 풍부한 굴착 경험까지 갖춰 날카로운 훈수를 두기 때문이다. 장비를 받아서 쓰는 회사와 직접 만드는 회사의 차이다. 글로벌 TBM 공급사 관계자는 “완벽한 TBM 시공을 위해선 제작사와 운영사 간 호흡이 중요하다”며 “아무리 기계를 잘 만들어도 운영사를 잘못 만나면 현장에서 낭패를 본다”고 말했다.

강릉건설은 독자적인 선진형 신기술인 ‘복합 실드TBM’을 활용해 굴진효율을 높였다. 실드와 세미실드의 장점을 결합해 연장 500m∼1.5㎞ 구간에 최적화시켰다. 지난 2014년 동해 북평화력발전소 1, 2호기 건설공사(3공구)의 경우 T사가 포기한 현장을 떠맡아 복합실드 공법 적용에 성공했다.

 

◇실드TBM 경쟁력 핵심은 굴착 속도

강릉건설은 창립 이래 부채비율 300% 수준을 줄곧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초창기에는 외부 차입이 많은 부실 회사라는 오해도 받았다. 하지만 공사에서 수익이 나는 대로 새 장비를 사고, 기술개발에 쏟아붓는 경영철학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중엔 되레 발주처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돈 버는대로 오너 주머니로 직행하는 회사보다 믿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이 회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17대(실제 활용 기준)의 TBM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강릉건설은 장비 운영과 기술 지원이 가능한 기술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다.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가 곧바로 신기술 개발로 이어지는 원스톱 체제다. 20년 이상 경력의 토목분야 시공기술사와 TBM 기계 전문가를 현장 배치하고, 토질ㆍ지질분야 전문 기술사를 정기적으로 현장에 파견해 복합지층 및 설계변경 사항에 대응한다.

이를 통해 현재 특허등록 41건, 특허출원 7건 등 실드TBM을 비롯해 비개착 공법, 암반굴착 분야에 다양한 신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국내 최장, 최고, 최대’ 등 숱한 기록을 탄생시킨 힘의 원천이다.

TBM 굴착현장에선 다양한 변수와 싸워야 한다. 우선, 한국 특유의 변화무쌍한 복합지층을 이겨내야 한다. 풍화암처럼 무른 암반과 경암처럼 단단한 암반이 뒤섞여 있다. 석영 함유량이 많은 편마암, 화강암 등을 굴착할 때는 디스크커터가 빨리 닳아 교체 주기가 짧다. 질척질척한 진흙이나 점토 퇴적암인 이암 등으로 구성된 연약 지반도 난코스다. 터널을 뚫어도 받쳐주는 힘이 약해서 TBM과 세그먼트에 가해지는 압력이 세진다.

수압과의 싸움도 변수다. 바다, 하천 밑을 뚫는 터널공사는 굴착 깊이에 따른 압력 외에도 수압을 함께 견뎌야 한다. 국내 최고 심도, 해저 최장 터널인 ‘진해∼거제 해저가스관 공사(주배관 1공구)’의 경우 최고 깊이 94m 구간에서 만조 기준으로 최대 8bar의 압력을 견뎌 냈다. TBM 장비의 임계점(최대 9bar)에 육박하는 극한의 환경을 이겨낸 셈이다.

굴착 속도는 실드TBM 경쟁력의 핵심이다. 현재 진행 중인 광양∼여수지역 전력구 공사는 국내 최대 암반 강도(245㎫) 현장이다. 강릉건설은 심도 90m, 7∼8bar의 고압을 견디면서 지난해 12월에 무려 270m를 굴진했다. 국내 실드TBM 기준 월 굴진량 최고 기록이다.

김중희 회장은 “강릉건설은 26년간 대한민국 바다와 땅 속 지도를 바꿔 왔다”며 “앞으로도 더 앞선 국산 TBM 장비 개발과 특화된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리겠다”고 말했다.

 

[실드TBM]

‘기계 두더지’로 불리는 실드TBM은 앞에서 파고, 뒤에서 다지는 구조다. 지하에선 굴착기계가 돌아가고, 지상에선 굴착토사를 퍼올려 재처리하는 대규모 플랜트 공장이다. 지하에선 커터헤드가 암반을 압쇄ㆍ절삭하는 동시에 세그먼트를 터널 내벽에 끼워 넣어 원형터널을 만들어 간다. 지상 작업도 중요하다. 굴착된 흙과 자갈 등을 잘게 부수어 터널 밖으로 빼내는 작업과 적정 유액을 공급(이수)하는 속도가 암반 등 현장여건에 맞춰 톱나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려야 한다. 최적의 굴착 속도와 현장 안전을 위해선 장비 선택부터 현장 운영까지 상당한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김중희 회장]

김중희 강릉건설 회장의 별명은 ‘오뚝이’, ‘돌격대장’이다. 후진장치가 없는 TBM처럼 지난 1994년 강릉건설 창립 후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 왔다. 외환위기(1997년)와 금융위기(2008년) 등 숱한 위기를 만났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그 힘의 원천은 ‘기술’이다. 장비, 기술 욕심이 남달라서 이익이 나면 좋은 장비, 좋은 기술을 찾아 투자한다. 난코스가 많은 해저터널 TBM 시공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2015년 ‘건설의 날’에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글=김태형기자 kth@

사진=안윤수기자 ays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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